대학로는 어떻게 연극의 거리가 되었나

혜화역에서 내려 마로니에공원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한 블록마다 극장 간판이 하나씩 나타난다. 어느 건물 지하에는 작은 소극장이 숨어 있고, 어느 건물 3층에는 오픈런 중인 코미디가 걸려 있다. 이 풍경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우리는 대학로가 처음부터 연극의 거리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거리의 이름부터 연극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대학이 있어서 대학로이고, 대학이 떠난 자리에 극장이 들어섰다. 그 순서를 따라가 본다. 연극이 이 길을 고른 것인지, 이 길이 연극을 불러 앉힌 것인지, 오늘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한 번쯤 알아 두면 같은 무대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01이름에 먼저 새겨진 것은 배움이었다
국가기록원의 대학로 기록을 보면, 이 일대는 조선시대에 숭교방이라고 불렸다. 교육을 존경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기관이 있었던 동네이니 이름이 곧 동네의 직업이었던 셈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동쪽 숭교방이라는 뜻으로 동숭동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 이름은 지금도 행정동명과 극장 주소에 그대로 남아 있다.
공연 정보 사이트에서 극장 주소를 열어 보면 동숭동이라는 글자를 자주 만나는데, 그게 바로 이 흔적이다.
1924년에는 경성제국대학이 이 일대에 세워졌다. 이후 서울대학교로 이어지는 학교였고, 문리대와 법대, 본관이 동숭동 캠퍼스를 채웠다. 1965년에는 이 길에 대학로라는 공식 도로명이 붙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대학로라는 이름이 공식화된 시점의 이 거리는 학생과 교수,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다방과 서점의 거리였다. 극장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오늘 대학로를 연극의 거리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 거리가 학교 앞 거리였다는 사실을 모른 채 걷는다.
02대학이 떠난 자리에 생긴 빈 공간
전환점은 1975년이다. 서울대학교가 동숭동 캠퍼스를 떠나 관악산 아래 신림동 관악캠퍼스로 옮겼다. 국가기록원은 이 이전이 대학로가 문화예술 거리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 정리한다. 학생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큰 건물들이 남았다.
문과대학, 법과대학, 본관이 있던 터에는 마로니에공원이 만들어졌고, 건물 앞에 서 있던 마로니에 세 그루가 공원 이름이 되었다. 지금 공원에는 마로니에 8그루와 은행나무 18그루가 있다고 서울시 미디어허브는 전한다.

두 나무는 서로 다른 종이니, 가을에 노랗게 물드는 쪽은 은행나무라는 것까지 알고 걸으면 산책이 한결 재미있어진다.
공원 한쪽에는 서울대학교 유적 기념비가 서 있다. 청동으로 만든 옛 캠퍼스 모형이 비석 앞에 놓여 있어서, 지금 연극을 보러 오가는 길이 한때 어떤 건물들로 채워져 있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혜화역에서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이 비석 앞에서 이삼 분만 서 있어 보시라. 극장 간판에 가려진 이 거리의 첫 번째 층위가 그제야 보인다.
학교가 떠난 자리를 채운 것은 공공의 문화 인프라였다. 서울시 미디어허브에 따르면 1975년 이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설립되어 아르코미술관과 동숭아트센터 같은 국공립 문화시설의 기반이 되었다. 지금 마로니에공원 곁에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은 옛 서울대 본관 건물이고, 현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쓰고 있다.
학교의 건물이 예술 행정의 건물로 이어진 것이다. 대학로가 연극의 거리가 되기 전에, 먼저 예술을 지원하는 기관들이 터를 잡았다는 순서를 기억해 둘 만하다.
03법이 바뀌자 극장이 늘었다
건물과 기관만으로 거리가 연극으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극장을 열고 극단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경향신문 분석은 1981년 공연법이 개정되면서 소극장 개설과 극단 조직이 자유로워졌고, 이때부터 대학로가 소극장의 중심지로 떠올랐다고 짚는다.
이후의 흐름과 맞아떨어지는 설명이다. 극장을 열 수 있는 제도가 갖춰지자 작은 공간들이 한꺼번에 문을 열었다.
이어서 서울시는 1985년 5월에 대학로를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했다. 같은 시기 아르코예술극장이 마로니에공원 안에서 대학로의 중심 극장으로 자리 잡았고, 주간경향은 1980년대 중반을 대학로가 연극의 메카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으로 짚는다. 큰 공공 극장이 중심을 잡고, 그 주변으로 민간 소극장이 모여드는 구조가 이 무렵 만들어졌다.
극장들의 개관 연도도 이 흐름을 뒷받침한다. 1984년 파랑새극장, 1986년 바탕골소극장, 1987년 연우소극장이 1980년대의 1세대 소극장이고, 1993년에는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와 정보소극장이 문을 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소극장이 차례로 늘어난 것이다. 큰 극장이 중심을 잡자 작은 극장들이 그 곁에 줄지어 들어서는 모양새였다.
04한 극장이 거리의 얼굴을 바꾼 순간, 학전
1991년 3월 15일에는 김민기 대표의 학전이 문을 열었다. 1994년 이곳에서 초연한 지하철 1호선은 한국 최초의 라이브 뮤지컬로 꼽히며, 대학로를 뮤지컬의 등용문으로 만들었다. 학전은 2024년 3월 15일 문을 닫을 때까지 33년을 운영했고, 지하철 1호선만 4,257회 공연에 누적 관객 73만 명을 기록했다. 학전이 33년 동안 만든 작품은 359편에 이른다.
학전의 폐관은 코로나19의 타격과 김민기 대표의 건강이 겹친 결과였다. 이 극장 하나가 사라졌다고 대학로 소극장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학전이 거리의 상징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 극장의 개관이 거리의 성격을 바꾸고, 한 극장의 폐관이 거리의 분위기를 바꾸는 곳이 대학로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 거리의 구조를 보여 준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는 대학로에 소극장이 약 100여 개 모여 연극 공화국으로 불렸다. 극장 간판이 한 블록에 몇 개씩 겹쳐 보이던 시절이다.
05지정이 끝이 아니었다, 문화지구 이후의 대학로
2004년 5월 8일 서울시는 혜화동, 동숭동, 이화동, 연건동, 명륜동을 포함한 13만 7천여 평을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연극의 거리가 공식 제도 안에 들어온 순간이다. 그런데 지정 이후의 이야기는 흔히 기대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데일리안 분석에서 문화지구 지정 전후 10년 사이에 대학로 건물 중 소극장 비율은 31.6%에서 20%로 줄었고, 뮤지컬 극장과 상업시설이 늘었다. 같은 기사는 소극장 월세가 10년 만에 126% 올랐다고 전한다.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지정 뒤에 소극장은 줄고, 뮤지컬 극장과 상업시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여기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대학로는 어떻게 연극의 거리가 되었나. 답은 세 단계로 정리된다. 대학이 떠나며 공간이 비었고, 공공기관이 터를 잡았으며, 법이 바뀌어 민간 극장이 들어섰다. 그리고 지정과 제도가 마련된 뒤에는, 임대료와 상업시설의 압력이 이 거리의 균형을 흔들었다. 연극의 거리는 한 번 완성되고 끝나는 결과가 아니라, 지금도 지켜야 유지되는 상태다.

서울시도 이 점을 알고 있다. 서울시는 민간 소극장을 빌려 창작스튜디오로 운영하고, 공연장 대관료를 최대 3주까지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건축법상 표시를 바꿀 수 있는 약 40곳의 소극장이 공연장으로 등록하도록 돕겠다는 계획도 있고, 마로니에공원을 공연예술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방침도 함께 나와 있다.
계획이 얼마나 실행되는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지만, 관객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응원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 극장에서 실제로 표를 사는 것이다. 이 거리의 역사가 쌓은 것은 결국 객석이 채워진 밤의 횟수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그 압력에 마지막 한 겹을 얹었다. 종로예술극장이 폐관했고 세실극장을 비롯한 여러 소극장이 뒤따라 문을 닫았다. 정부 지원이 주로 대관료를 지원하는 방식이어서 극장 운영자에게 직접 닿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불만이었다.
06이 역사를 들고 대학로를 걷는 법
역사를 알았다면 이제 몸으로 확인할 차례다. 가장 쉬운 코스를 하나 권한다. 혜화역에서 마로니에공원까지 올라가며 옛 서울대 터의 기념비를 먼저 보고, 붉은 벽돌의 옛 본관 건물 앞을 지나 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잠시 쉬어 보시라.
야외무대는 거리공연과 버스킹, 신인 배우의 데뷔 무대로 연중 무료 개방되어 있으니, 운이 좋으면 연습 중인 팀을 만날 수도 있다.
그다음에는 소극장 한 곳을 골라 한 편을 보시길 권한다. 큰 극장의 기획 공연보다 작은 극장의 오픈런 한 편이 이 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훨씬 솔직하게 알려 준다. 어디서 시작할지 막막하다면 이 웹진의 대학로 공연 목록에서 오늘 날짜로 공연 중인 작품을 열어 보고, 극장 이름 옆에 개관 연도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문을 연 극장에 들어가 본다면 여기까지 따라온 역사를 객석에서 마주하게 된다.
여기까지 걸어 보고도 어디가 어딘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마로니에공원의 좋은공연 안내센터에서 공연 안내를 받아도 좋다. 그래도 길이 막막하다면 그날은 공연 한 편만 정해 그 극장 앞까지 걸어가 보자. 이 거리는 한 번 걸어 본 사람에게 훨씬 친절하다.
- 국가기록원, 「대학로」,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Daehak-ro.do
- 서울시 미디어허브, 「마로니에공원」,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7115
- 서울시 미디어허브, 「대학로 문화지구」,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145605
- 경향신문, 「대학로 소극장 관련 분석」, https://www.khan.co.kr/article/202402221708001
- 주간경향, 「대학로와 아르코예술극장」, https://weekly.khan.co.kr/article/16219
- 더뮤지컬, 「학전과 지하철 1호선」, https://www.themusical.co.kr/Magazine/Detail?num=5289
- 데일리안, 「대학로 소극장 분석」, https://www.dailian.co.kr/news/view/1012993/
- 데일리안, 「학전 폐관」, https://www.dailian.co.kr/news/view/1385515/
- 서울시, 「대학로 공연장 육성·지원 계획」, https://news.seoul.go.kr/culture/archives/32966
- 데일리안, 「코로나19 소극장 지원 정책」, https://www.dailian.co.kr/news/view/8955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