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이라는 동네의 시간

공연을 보러 혜화동에 온 날, 극장 문이 열리기까지 한 시간이 비는 때가 있다. 그럴 때 대부분은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 휴대폰을 본다. 하지만 이 동네는 한 시간쯤 걸어 보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다. 걸어서 십 분 안에 조선시대 성문과 일제강점기의 상처, 1950년대에 문을 연 서점과 다방이 줄지어 있기 때문이다.
극장 간판 뒤에 숨어 있는 이 동네의 시간을 한 겹씩 벗겨 보면, 공연 전후의 빈 시간이 하나의 코스가 된다.
01성문 하나가 말해 주는 동네의 위치
혜화동의 이름이 붙은 가장 오래된 흔적은 혜화문이다. 동소문이라고도 불린 이 문은 한양도성의 동북쪽 문으로, 조선시대에 강원도와 함경도 쪽으로 나가는 관문이었다. 한양도성은 1396년, 조선 태조 5년에 쌓기 시작했다. 그러니 혜화동은 도시의 가장자리, 서울이 끝나고 지방이 시작되는 문턱이었다.
이 문은 순탄하게 살아남지 못했다. 서울시 미디어허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문루가 철거되었고 1938년에는 석축까지 헐렸다. 문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1990년대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되었다.
여기서 알아 둘 점이 있다. 지금의 위치는 원래 문이 있던 창경궁로 쪽 자리가 아니고, 복원 때 옮겨진 곳이다. 그러니 혜화문 앞에서 이 문이 서 있던 진짜 자리는 어디였을까를 상상해 보는 일도 산책의 재미가 된다.

한양도성은 본래 18.6킬로미터에 달했지만 지금 남은 구간은 13.1킬로미터다. 도시가 커지는 동안 곳곳이 끊긴 것이다. 서울시는 2016년과 2017년에 도로와 건물 때문에 끊기거나 사라진 구간에 한양도성 흔적표시를 설치했다.
물리적인 복원은 아니고 상징적인 표시다. 길을 걷다 바닥이나 담장에서 성곽의 흔적을 알리는 표지를 만난다면, 그것이 이 표시일 가능성이 높다.
02학교가 있던 동네, 그리고 학교가 떠난 동네
혜화동 곁의 동숭동은 학교의 동네였다. 1924년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서울대학교병원 쪽 동숭동에 경성제국대학의 건물이 세워졌고, 이후 법학부와 의학부, 공학부 같은 단과대학이 만들어졌다. 다만 이 동숭동 캠퍼스에는 일제의 차별 정책이 반영되어 한국인 정원이 제한되었고 공학부가 없는 구조였다. 이 땅에 세워진 이 대학이 어떤 구조였는지를 알고 나면 캠퍼스 터가 단순한 옛터가 아니게 된다.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로 바뀐 뒤에도 문리대는 동숭동에 있었고,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산으로 옮길 때까지 이 지역을 지켰다. 지금 마로니에공원이 있는 자리가 그 캠퍼스였다. 학교가 떠난 뒤 공원이 만들어지고 문화예술단체가 들어와 오늘의 대학로가 되었다.
혜화동에서 공연을 보는 일은, 말하자면 한때 학생들이 공부하던 자리에서 극장의 불이 켜지는 시간에 앉아 있는 일이다.

03성균관 곁의 반촌과 명륜동
혜화동에서 조금만 걸으면 명륜동이다. 명륜동은 성균관의 명륜당에서 이름을 따왔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이자 공자를 모시는 신성한 곳이었다. 성균관의 일을 돕던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 살아 반촌이라는 유림촌을 이뤘다. 반촌은 조선시대 순라군이나 의금부 관리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던 특별한 지역이었다.
성균관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중심이고, 도서관 격인 존경각, 활과 화살을 보관하던 육일각, 제례를 관리하던 향관청 같은 시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 시설들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대학로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공연 전 한 시간이 비는 날 걸어서 다녀오기에 부담이 없다.
04오래 버틴 가게들, 동양서림과 학림다방
혜화동의 시간이 가장 읽기 쉬운 곳은 오래된 가게다. 창경궁로 271-1의 동양서림은 1953년 9월 1일에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의 맏딸 이순경 씨가 문을 연 독립서점이다. 같은 자리에서 60년 넘게 운영되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 2층에는 2018년에 국내 최초의 시집 전문점이라는 위트앤시니컬이 들어왔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문인과 미술가, 연극배우의 아지트였다고 하니,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책 한 권을 사 가는 이 일이 오래된 풍경의 연장인 셈이다.
학림다방은 서울 종로구 명륜4가 94-2, 대학로 119에 1956년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꼽힌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민주화 운동과 예술문화의 중심지였고 지금은 서울시 미래유산과 오래가게로 지정되어 있다.

이름의 학림은 서울대 문리대 축제인 학림제에서 나왔고, 김지하와 천상병, 이청준 같은 문인이 드나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공연이 끝나고 얘기를 나눌 곳이 필요한 날에는 이 다방이 가장 자연스러운 다음 장소가 된다.
두 가게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쪽은 책, 다른 한쪽은 말이 오가는 곳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위치다. 둘 다 서울대 문리대 터와 이웃한 자리에서 오래 책과 말을 받아 온 곳이다. 학교가 떠난 뒤에도 이 가게들이 버틴 덕분에, 학생이 없는 지금의 동네에도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남아 있다.
05도성 복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혜화문 이야기를 하면서 한 가지 더 짚어 두고 싶다. 한양도성의 복원은 옛일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일이다. 창의문 구간은 1968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방호를 위해 58년 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되었는데, 2026년 3월에 대규모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2027년 9월 준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 복원이 끝나면 백악산과 인왕산의 녹지축이 이어진다. 혜화동에서 이 구간까지는 거리가 있지만, 성곽을 따라 걷는 코스가 점점 길어진다는 점은 이 동네에 오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다. 지금 걸을 수 있는 구간부터 걸어 두면, 나중에 길이 이어졌을 때 그만큼 더 잘 보인다.

06계단 위의 성당, 골목이 품은 또 하나의 시간
혜화동 골목을 걷다 보면 넓은 계단 위에 석조 부조가 새겨진 건물을 만나기도 한다. 혜화동성당이다. 등록문화재 제230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공연장과 카페가 즐비한 동네에서 이런 건물은 조용히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를 둘러볼 때는 미사 시간을 피하고 조용히 다녀오자. 계단 아래에서 건물 정면만 바라봐도 이 동네가 극장만의 동네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07벽화마을이 보여 준 동네의 다른 얼굴
혜화동에서 조금 벗어난 이화동에는 벽화마을이 있다. 2006년 문화관광부 산하 공공미술추진위원회와 종로구가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조성한 마을이다. 3억 5천만 원의 예산으로 70여 명의 작가와 3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해 섞다, 잇다, 함께 어울리다라는 주제의 벽화와 조형물을 만들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한류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주민과의 갈등이 커졌고, 꽃계단과 잉어계단 같은 대표 벽화 일부가 훼손되거나 철거되었다. 2020년 공공미술 시민발견 프로젝트는 벽화가 개별 공간의 정체성이 아닌 범용적 이미지로 변했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최근에는 의미 있는 벽화를 복원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방문한다면 큰 소리로 떠들거나 주택 안을 들여다보는 행동은 삼가고, 주민 생활 공간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걷자.

08혜화동의 시간을 세 겹으로 읽으면
지금까지 걸어온 곳을 한 줄로 묶으면 혜화동의 시간은 세 겹이다. 첫째 겹은 도성과 성균관의 시간으로, 조선이 이 자리를 도시의 문턱이자 배움의 터로 썼던 때다. 둘째 겹은 대학의 시간이다. 1924년에 경성제국대학이 세워지고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가 이어 쓰다가 관악으로 떠난 때다.
셋째 겹은 책과 다방과 극장의 시간으로, 1950년대의 서점과 다방에서 시작해 지금의 소극장으로 이어진다.
세 겹은 따로 있지 않고 같은 길 위에 겹쳐 있다. 그래서 같은 길을 걸어도 오늘 읽은 것에 따라 풍경이 달라 보인다. 극장 앞에서 시간이 비면 이 세 겹 가운데 하나만 골라 걸어 보자. 어느 겹을 고르든 돌아와 앉는 객석은 조금 더 깊어진다.
09공연 전 한 시간, 이렇게 걸어 보자
여기까지 읽고 나서 코스를 하나 정리한다. 혜화동에서 출발해 혜화문을 보고, 가능하면 성곽을 따라 낙산 쪽으로 걸어 보자. 낙산공원은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어서 해 질 무렵에 가면 극장으로 돌아오는 길이 훨씬 가볍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양서림에 들러 책 한 권을 고르거나, 학림다방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 된다.
시간이 정말 빠듯하다면 코스를 줄여도 된다. 혜화문만 보거나 동양서림만 들러도 이 동네의 시간 한 겹은 확인한 것이다. 혜화동은 한 번에 다 보여 주는 동네가 아니라, 갈 때마다 한 겹씩 보여 주는 동네다. 다음 공연 날에는 오늘 가지 못한 곳을 하나 골라 보시라.
- 서울시 미디어허브, 「혜화문」,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3160
- 서울시 미디어허브, 「이화동 벽화마을」,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0295
- 국가기록원, 「서울대학교」,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seoulUniver.do
- hangyo.com, 「경성제국대학」, https://hangyo.com/mobile/article.html?no=20307
- 서울시 미디어허브, 「성균관과 반촌」,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9834
- 서울시 미디어허브, 「한양도성 흔적표시」,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1133707
- 서울시 미디어허브, 「동양서림」,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0467
- 서울시 미디어허브, 「학림다방」,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1072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