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로 불리던 다섯 사람이 이름을 찾기까지: 창작 뮤지컬 <브로큰 넘버스> 초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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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23번, 21번, 408번, 130번. 이름이 아니라 숫자로만 불리는 다섯 사람이 벽 안에 갇혀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창작 뮤지컬 <브로큰 넘버스>는 이 설정 하나로 객석을 붙잡는 작품이다.
11월 18일 링크더스페이스 1관에서 초연의 막이 오른다. 초연 작품은 후기가 없어서 고르기 어렵지만, 이 작품은 낭독회와 연습 공개 같은 단서로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01이번 소식의 핵심
공연은 2026년 11월 18일부터 2027년 2월 7일까지 링크더스페이스 1관에서 열린다. 석 달가량 이어지는 일정이라, 개막 직후의 반응을 보고 날짜를 천천히 잡아도 되는 여유가 있다.
창작진은 이렇게 소개된다. 극작과 작사는 성재현, 작곡은 양지해, 연출은 이오진, 안무는 김병진이다. 포스터와 보도 사진은 낭만바리케이트가 제공했고, 이 작품은 낭만바리케이트의 작품으로 올라 있다. 러닝타임과 관람 연령은 아직 공개 전이다.
예매처 상세 정보가 열리면 가장 먼저 확인할 항목이다. 낭독회 때는 공연명이 달랐으니, 검색할 때는 브로큰 넘버스라는 제목으로 찾자.
02다섯 개의 번호, 열다섯 명의 배우
이 작품의 눈에 띄는 구조는 멀티 캐스팅이다. 다섯 개의 배역마다 세 명의 배우가 배정되어 모두 열다섯 명이 출연한다. 배역별 명단은 다음과 같다. 1번은 박영빈, 박주혁, 류찬열이다. 23번은 김현기, 김준식, 노혜성이다.
21번은 문진아, 안상은, 박선영이다. 408번은 이서후, 이선주, 최수현이다. 130번은 정호준, 이현재, 장민수이다. 이 명단은 9월 29일 캐스팅 공개 기준이라 이후 바뀔 수 있다.
같은 번호가 회차에 따라 다른 얼굴로 나온다는 뜻이다. 배역이 다섯이고 배우가 열다섯이니, 한 회차의 무대에는 다섯 사람이 서는 구조로 읽힌다. 인원이 적은 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의 호흡과 눈빛이 객석에 그대로 닿는다.

기사에는 회차별 출연 순서가 나와 있지 않으니, 어느 날 누가 나오는지는 예매처의 캐스팅 일정을 보고 정하면 된다.
멀티 캐스팅 작품을 처음 본다면 이렇게 접근해 보자. 마음에 드는 배우가 한 명 있다면 그 배우가 나오는 회차를 먼저 고르자. 한 번 보고 나서 같은 번호를 맡은 다른 배우의 회차를 이어서 보면, 같은 대사가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크다.
한 사람의 이름을 찾아가는 이야기에서, 같은 배역이 서로 다른 해석으로 여러 번 등장한다는 구조는 이 작품의 주제와도 잘 어울린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걸 무대 위에서 몸으로 보여 주는 셈이다.
03이름을 잃은 이야기의 힘
설정을 다시 짚어 보면, 다섯 사람은 이름과 기억을 잃은 채 벽 안에 갇혀 있다. 번호로만 불리다가 서로의 기억 조각을 맞춰 가면서 진짜 이름과 과거를 되찾아 간다. 이런 이야기의 매력은 관객이 인물과 같은 위치에서 출발한다는 점에 있다.
관객도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인물들과 함께 단서를 모은다. 미스터리 구조를 가진 뮤지컬은 노래 하나하나가 단서가 되곤 한다.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이다. 처음 볼 때 놓친 단서가 두 번째에 보이기 때문이다.
벽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도 이 작품의 힘이다. 다섯 사람이 한 곳에 갇혀 있으니 인물 사이의 거리가 곧 이야기의 거리가 된다. 소극장 무대에서 객석과 무대가 가까울수록, 누가 누구 곁에 서고 누가 등을 돌리는지가 대사만큼 많은 말을 한다.
숫자로 사람을 부른다는 설정이 주는 서늘함도 있다. 이름은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의 표식이다. 그 표식이 사라졌을 때 사람이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하는지를 따라가는 이야기는, 사건의 해결보다 사람의 변화에 무게가 실리기 쉽다.
그래서 줄거리의 반전을 기대하기보다, 다섯 인물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길 권한다. 관계가 변하는 지점이 곧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일 가능성이 크다.

번호가 1, 23, 21, 408, 130으로 순서 없이 늘어서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번호가 작을수록 먼저 들어온 사람일지, 아무 의미 없는 배정일지는 객석에 앉아야 알 수 있다. 인물이 처음 서로를 번호로 부르는 장면에서 누가 누구를 어떤 말투로 부르는지 살펴보자.
숫자를 부르는 말투에는 두 사람의 거리가 그대로 담긴다. 처음엔 번호로만 부르던 인물이 어느 순간부터 다른 말로 부르기 시작한다면, 그 지점이 기억이 돌아오는 순간일 가능성이 크다.
04낭독회에서 무대까지
이 작품은 갑자기 나타난 신작이 아니다. 2025년 12월 18일 강동아트센터에서 낭독회 형식으로 먼저 관객과 만났다. 공연명은 작곡열전 2: 브로큰 넘버스였고, 낭만바리케이트의 작품으로 올랐다. 시리즈 이름에 작곡이 들어가 있으니, 이야기보다 음악을 앞세워 먼저 선을 보인 자리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낭독회는 정식 초연이 아니니, 이번 11월 공연이 초연이라는 점과 구분해 두면 된다.
창작 뮤지컬이 낭독회를 거쳐 초연까지 가는 과정은 대학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길이다. 무대 장치 없이 대본과 음악만 먼저 보여 주고 반응을 모은 뒤, 본공연으로 확장한다. 이 방식의 장점은 이야기의 뼈대를 먼저 검증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초연이라서 불안하다면, 이 작품이 이미 한 번 관객 앞에 섰다는 사실이 작은 안심이 될 수 있다. 낭독회에서 곡으로만 만났던 넘버가 이번에는 배우의 몸과 무대 위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짚어 보는 것도 초연을 보는 재미이다.
05제작사의 전작에서 읽는 결
낭만바리케이트는 2023년에 창작 뮤지컬 <광염 소나타>를 무대에 올린 제작사이기도 하다. 이번 보도에 쓰인 사진과 함께 그 작품의 공연 장면과 연습 현장 사진이 남아 있어서, 제작사가 어떤 분위기의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왔는지 미리 엿볼 수 있다.
다만 <브로큰 넘버스>와 같은 결이라고 단정하지는 말자. 작가와 작곡가가 처음 만난 작품은 이전과 전혀 다른 소리를 내는 경우도 많다. 전작은 분위기를 짐작하는 참고 자료로만 삼으면 된다.

06개막 전부터 문을 여는 방식
제작진이 개막 전부터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도 흥미롭다. 개막 약 4주 전부터 매주 월요일에 실제 연습 현장을 유튜브 라이브로 공개한다. 접속 방법은 공식 채널에서 확인하면 된다.
이 방식은 관객에게 쓸모가 있다. 모르는 작품은 예매 버튼을 누르기까지 부담이 크다. 연습 장면을 미리 보면 배우들의 호흡과 작품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특히 멀티 캐스팅 작품이라면 어떤 배우의 연기가 내 취향에 맞는지 미리 볼 수 있다는 점이 크다.
라이브에 접속해 보고, 마음에 드는 배우를 찾아 회차를 고르는 방식을 추천한다. 연습 공개가 끝난 뒤 예매해도 늦지 않다. 공연 기간이 석 달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07혜화동의 시선: 초연 작품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대학로에서 창작 뮤지컬의 초연은 매 시즌 쏟아진다. 그중 상당수는 짧은 기간에 사라지고, 그 가운데 일부만 재연으로 이어진다. 재연으로 이어지는 작품에는 초연 때 객석을 채운 관객의 입소문이 큰 역할을 한다. 초연을 보는 관객은 그래서 작품의 운명에 참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석 달 가까이 이어지는 일정이라 입소문이 쌓일 시간은 충분하다. 초반에 본 관객의 한마디가 후반 회차의 객석을 채우는 일도 충분히 생긴다. 이 작품이 좋았다면 후기를 남기고 주변에 권해 주자. 창작 뮤지컬은 그렇게 다음 시즌으로 건너간다.
첫 시즌 작품은 어디까지 해냈는지보다 어디로 가려는지를 보면 된다. 이름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의 기억으로 서로를 되찾는다는 방향은 분명하다. 그 방향이 마음에 닿으면 몇 군데의 거친 부분은 오히려 정이 된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번호로 불리던 인물 중 누가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 동행과 이야기해 보자. 같은 장면을 보고도 다른 인물을 떠올리는 걸 확인하는 일이 의외로 즐겁다. 처음 숫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마지막에 어떤 말로 서로를 부르는지, 그 호칭이 바뀌는 순간이 이 작품이 관객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답일 수 있다.
개막 전에는 줄거리를 너무 깊이 찾아보지 않는 편이 몰입에 좋으니, 정체를 찾아가는 이야기답게 모르는 채로 첫 번호를 맞이해 보자. 번호 다섯 개만 기억해 가도 객석에서 길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 더뮤지컬, 「창작 뮤지컬 <브로큰 넘버스>, 11월 초연…박영빈·박주혁·류찬열 캐스팅 공개」, https://www.themusical.co.kr/News/Detail?num=14759
- KOPIS(공연예술통합전산망), 「작곡열전 2: 브로큰 넘버스」(2025년 낭독회), 공연 코드 PF2805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