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기억이 움직인다: 세 번째 시즌을 맞은 무언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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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흐려지는 사람 곁에 있어 본 분이라면 안다. 그 상황을 설명하는 말은 늘 모자라다. 병명을 말해도, 증상을 나열해도,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세계에 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이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풀어 낸다.
말을 지워 버리는 것이다. 대사도 노래도 없이 몸짓과 라이브 연주만으로 치매를 앓는 한 남자의 기억을 따라간다. 세종문화회관 세종S씨어터에서 지금 세 번째 시즌이 공연 중이고, 11월 29일까지 이어진다.
01이번 시즌의 기본 정보
공연 기간은 2026년 9월 18일부터 11월 29일까지이다. 공연장은 세종문화회관 안의 세종S씨어터이다. 제작은 연극열전이며, 이 작품은 연극열전10 시리즈의 한 편이다.
러닝타임은 1시간 15분, 관람 연령은 만 8세 이상이다. 대사가 없는 공연이라도 관람 연령 기준은 같으니, 아이와 함께 간다면 이 숫자를 참고하자.
기본 공연 시간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20시, 토요일과 일요일은 15시와 19시 30분이다. 평일 20시 회차는 러닝타임을 더해도 밤 9시 15분쯤 끝난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들어가도 되고, 공연이 끝난 뒤 여운을 걷는 시간으로 쓸 여유도 남는다.
주말에는 오후 회차를 고르면 공연 뒤 저녁 약속까지 이어 붙이기 좋다. 월요일은 기본 시간표에 회차가 없으니 일정을 잡을 때 참고하자.
지금 공연 중인 작품이라 먼저 본 관객의 이야기를 들어 본 뒤 예매할 수 있다. 다만 마감까지 남은 시간이 길지 않으니 주말 회차가 차기 전에 일정을 잡길 권한다.
02대사 없이 어떻게 이야기를 하나
이 작품의 줄거리는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치매를 앓는 한 남자가 뒤섞인 기억 속에서 사랑과 우정,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을 되짚어 가는 여정이다. 이야기는 말 대신 배우의 몸으로 전달되고, 라이브 연주가 감정의 온도를 맡는다.
대사 없는 연극이라고 하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분이 많다. 하지만 말이 없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말은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몸은 말보다 정직한 순간이 많고, 손이 향하는 곳과 시선이 머무는 곳이 이야기를 대신한다.

처음 보는 관객은 대사를 기다리지 말자. 대신 인물이 어디를 바라보고 누구에게 다가가는지만 따라가면 된다. 이야기는 거기서 충분히 읽힌다.
특히 이 작품은 치매라는 소재와 형식이 맞아떨어진다. 언어가 가장 먼저 흐려지는 상태를 언어 없이 보여 준다는 역설이다. 관객은 이야기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인물이 느끼는 혼란과 낯섦을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게 된다.
장면이 갑자기 바뀌고 앞뒤가 맞지 않는 순간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그 어긋남이 이 작품이 의도한 경험이다.
말이 없는 무대에서는 관객이 해석하는 몫이 커진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어떤 분은 사랑을, 어떤 분은 이별을 읽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 차이가 오답이 되지 않는다. 기억을 잃어 가는 사람의 세계가 원래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장면과 옆 사람이 읽은 장면이 다르다는 것을 공연이 끝난 뒤 확인하는 일도 이 작품의 즐거움이다.
03소리가 말을 대신하는 방식
대사가 없는 만큼 음악의 역할이 크다. 배우와 라이브 연주자가 함께 무대에 서서 이야기를 완성한다. 녹음된 음악이 아니라 눈앞에서 연주되는 소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연주자가 같은 공간에 있으면 배우의 몸짓과 소리가 서로의 호흡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같은 장면도 회차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출연진으로는 박정원, 전성우, 백성현, 김주연, 이정화, 김시유, 곽다인 등이 올라 있고, 창작진으로는 허지혜, 기욤 피지, 김치영 등이 참여한다. 전체 명단은 예매처의 캐스팅 안내에서 볼 수 있다. 말이 없는 무대에서는 배우 한 사람의 몸짓과 연주자 한 사람의 음 하나가 곧 문장이 되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평소보다 무겁게 읽힌다.
올해 공개된 보도 사진을 보면 배우들이 교실 책상 위에서 움직인다. 책상은 가장 평범한 가구이면서 누구에게나 기억의 한 조각이 걸려 있는 물건이다. 그 위로 올라간 몸이 무엇을 되짚는지 따라가 보면, 대사 없이도 장면이 어떤 시간을 불러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소품이 적은 무대에서는 이런 평범한 사물 하나가 기억의 문 역할을 한다.

음악에 집중하는 방법을 하나 소개한다. 공연 중 한 번쯤은 눈을 감고 소리만 들어 보자. 몸짓을 보지 않고도 장면의 분위기가 전해지는 순간이 있다. 눈을 뜨고 다시 보면 같은 장면이 더 깊이 읽힌다.
04객석에서 이 작품을 따라가는 세 가지 방법
대사가 없는 연극은 처음에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대기 쉽다. 세 가지 기준을 먼저 정해 두면 편하다.
첫째, 주인공의 손과 시선을 따라가자. 기억이 뒤섞이는 사람의 세계에서는 물건 하나, 사람 하나에 마음이 머무는 방식이 곧 이야기이다. 손이 머뭇거리는 곳이 그 사람에게 중요한 기억이 걸린 곳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장면이 바뀌는 순간의 소리를 듣자. 이 작품은 음악이 장면의 문을 여닫는다. 소리가 달라지면 시간이 바뀌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길을 잃지 않는다. 앞 장면과 연결이 되지 않는 순간이 와도, 소리의 결이 바뀌었는지만 확인하자.
셋째, 모든 장면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의 시간은 순서대로 흐르지 않는다.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은 그대로 두고 지나가도 괜찮다. 끝에 가서 그 장면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낯섦이 이 작품이 전하려는 경험의 일부이다.
05한국에서 걸어온 세 번의 시즌
이 작품은 2019년 우란문화재단 초청공연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후 2022년 라이선스 초연, 2023년 재연을 거쳐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맞았다. 이 길을 정리하면 이렇다. 초청공연으로 처음 선보인 작품이 라이선스 제작으로 넘어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초청에서 라이선스 제작으로 올라선 것은 이 작품이 한 번 다녀가는 손님이 아니라 한국 무대의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는 신호로 읽힌다.
대사 없는 연극이 한국에서 세 번의 시즌을 이어 가는 일은 쉽지 않다. 언어가 중심인 연극 환경에서 몸과 음악만으로 관객을 모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작품이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반복해서 불려 왔다는 사실이다.
2019년에 한 번 본 관객이 2022년과 2023년을 지나 올해 다시 객석에 앉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같은 작품이 시간을 두고 돌아올 때, 기억을 다루는 이야기는 관객의 기억과도 겹치기 시작한다.

처음 보는 관객에게 이 이력은 작은 안심이 된다. 낯선 형식이어서 망설여진다면, 이미 여러 번 한국 관객과 만난 작품이라는 점을 떠올리자. 이전 시즌을 본 분은 이번에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06혜화동의 시선: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
혜화동은 이 작품이 대사 없는 연극에 대한 선입견을 허무는 사례라고 본다. 말이 없는 연극은 난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이 작품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를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려 낸다. 치매를 말로 설명하는 대신 몸으로 보여 줄 때, 비슷한 상실을 지켜본 관객에게는 어떤 대사보다 직접적으로 가닿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공연은 가족과 함께 보기에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다만 소재가 소재인 만큼 개인의 경험에 따라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가까운 이를 돌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길 권한다. 부모님이나 가족과 함께 볼 생각이라면 소재를 미리 알리고 가는 편이 서로 편하다.
아직 마음이 무겁다면 혼자 먼저 보고 함께 볼지 정해도 된다. 대사가 없는 만큼 관람 중에 말을 걸 일이 없어서, 같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같은 경험을 나눌 수 있다. 공연 후에는 바로 일어서지 말고 잠시 앉아 있어 보자.
객석에서 여운을 정리하는 시간이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된다. 공연이 끝난 뒤 가까운 사람에게 안부를 한 번 전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대학로의 관객에게도 이 작품은 의미가 있다. 소극장 연극에서 대사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평소 의식하지 않다가, 대사가 사라진 무대를 보면 배우의 몸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새삼 알게 된다. 이 작품을 본 뒤에 다시 대사가 많은 연극을 보면,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 먼저 들릴 것이다.
07관람 전에 해 볼 것
일정을 먼저 정하고, 대사가 나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인물의 시선과 움직임을 따라가겠다고 마음먹고 들어가자. 소재가 마음에 걸린다면 먼저 본 분들의 후기를 한두 개 읽어 두면 어떤 정서의 작품인지 미리 가늠할 수 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동행과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 하나를 서로 말해 보자. 말 없는 작품을 말로 되짚는 일이 의외로 큰 위로가 된다. 같은 장면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작품이 왜 말 없이도 충분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 더뮤지컬, 「<네이처 오브 포겟팅>, 대사 없는 연극으로 세 번째 시즌…치매 서사를 몸짓으로」, https://www.themusical.co.kr/News/Detail?num=14757
- KOPIS(공연예술통합전산망), 「네이처 오브 포겟팅」 공연 상세, https://www.kopis.or.kr/por/db/pblprfr/pblprfrView.do?mt20Id=PF2969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