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곧 고백의 청자가 되는 90분, 1인극 <전락>이 10월 대학로에서 다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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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뮤지컬
객석에 앉은 순간 관객이 구경꾼이 아니라 고백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 되는 연극이 있다. 카뮈의 소설 『전락』을 옮긴 1인극 <전락>이다. 한때 성공한 변호사였던 남자가 바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 스스로를 판사이자 참회자라고 소개하며 오래 숨겨 온 이야기를 꺼내는 그 자리를 객석이 대신 받는다.
작품은 2026년 10월 25일부터 12월 6일까지 대학로 TOM 2관에서 다시 관객을 만난다.
이 공연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청자의 문제다. 소설에서는 이름 없는 누군가가 주인공의 고백을 듣는다. 연극은 그 청자 자리에 객석의 관객을 앉혔다. 이 구조가 원작에서 어떻게 나왔고, 무대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가 이 공연의 핵심이다. 설명을 듣는 연극이 아니라 응답을 요구받는 연극인 셈이다.
01원작 『전락』은 어떤 이야기인가
『전락』은 알베르 카뮈가 1956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카뮈는 이듬해인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의 화자는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다. 그는 파리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사람으로, 지금은 암스테르담의 한 바에서 낯선 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스로를 판사이자 참회자라고 부르는 이 인물의 독특한 호칭은 작품을 읽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이제는 자기 잘못을 털어놓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백의 출발점이 된 사건도 있다. 클라망스가 파리의 퐁루아얄 다리에서 한 여성이 강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도 그냥 지나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경위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이후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는가다. 소설 전체가 그 계기에서 풀려나온다.
독자는 소설을 읽는 동안 클라망스가 정말 참회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백이라는 방식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있는 것인지를 계속 의심하게 된다. 이 의심이 『전락』을 오래 읽히게 만든 힘이다. 연극을 보러 가기 전에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클라망스의 말이 반드시 솔직하다고 믿지 않고, 말 뒤에 있는 속셈을 한 번쯤 의심하며 들으면 공연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02청자를 객석으로 옮긴 연극의 선택
원작에서 클라망스가 말을 거는 이름 없는 청자는 소설 속에서 '당신'으로 불린다. 소설에서 독자는 클라망스의 말을 읽을 뿐 말을 거는 대상은 아니다. 연극에서는 다르다. 배우가 관객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건네는 순간, 객석 전체가 고백을 듣는 사람이 된다. 관객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지만, 대답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반응으로 읽히는 상황에 놓인다.
다리 위 사건과 겹쳐 보면 이 선택은 더 선명해진다. 클라망스가 들은 것은 장면이 아니라 소리였고, 그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 지나갔다. 극장의 관객은 정반대 자리에 앉는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90분 동안 피할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자리다.
들어야만 하는 자리에 앉혀 놓고서야 방관이라는 선택이 무엇인지 묻는 구성으로 읽을 수 있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이 대사의 내용이 아니라 대답하지 못한 감각이라면, 연극이 의도한 대로 닿은 것이다.
이 공연은 1인극으로, 배우가 약 90분 동안 홀로 작품을 끌고 간다. 90분 동안 한 사람이 말을 하고 객석은 듣는다는 형식은 처음 보는 관객에게 다소 긴장될 수 있다. 하지만 청자가 바로 나라는 설정을 알고 가면, 오히려 시선과 침묵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배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나 말이 끊기는 순간에 무엇이 일어나는지에 집중해 보자.
연극에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만드는 효과도 있다. 소설은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지만, 극장에서는 같은 순간에 같은 말을 듣는 사람들이 한 방에 앉아 있다. 어떤 대목에서 웃음이 터지는지, 어떤 대목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지를 객석 전체가 함께 겪는다. 같은 대사도 어떤 날은 가볍게, 어떤 날은 무겁게 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클라망스라는 인물의 이중성이 더해진다. 그는 참회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판단하는 사람이다. 고백이 깊어질수록 듣는 쪽은 동정과 경계 사이에서 흔들리고, 객석의 침묵은 동의로도 거부로도 읽힌다. 배우가 이 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90분이 고해성사처럼 흐르기도 하고 재판정처럼 조여 오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그날의 객석이 함께 정한다.

03손상규가 만든 작품이 걸어온 길, 소극장에서 국립극단 무대를 거쳐 다시 대학로로
이 작품의 이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22년 더줌아트센터에서 초연이 열렸고, 손상규가 각색과 연출, 출연을 모두 맡았다. 2025년에는 국립극단 기획초청 시리즈 Pick크닉에 선정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 2026년 재공연이 대학로 TOM 2관에서 열린다. 제작은 프로젝트그룹 일다가 맡았다.
주목할 점은 이번 재공연의 역할 분담이다. 연출은 손상규가 맡고, 클라망스 역은 윤나무와 이동휘가 맡는다. 초연에서 각색과 연출, 출연을 모두 맡았던 손상규와 견주면, 이번에는 연출자가 무대 밖에서 작품을 지켜보고 다른 배우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구성이다. 한 사람이 만든 1인극을 다른 배우가 이어받는 구도가 이번 공연의 관전 포인트다.
1인극은 배우 개인의 해석이 곧 작품의 전부가 되기 쉬운 형식이다. 그래서 같은 대본을 두 배우가 번갈아 맡는다는 것은 비교의 재미를 만든다. 윤나무와 이동휘는 각각 다른 결의 배우다. 같은 말이 어떤 날은 서늘하게, 어떤 날은 능청스럽게 들릴 수 있다. 관객이 보게 되는 클라망스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이 작품을 두 번 볼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작품의 이동 경로도 흥미롭다. 더줌아트센터에서 출발한 공연이 국립극단의 기획초청 시리즈를 거쳐 명동예술극장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대학로로 돌아온다. 한 번 올리고 끝나는 공연이 많은 소극장 환경에서, 같은 작품이 해를 건너 여러 무대를 거친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이 다시 불려 나올 이유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큰 무대에서 작은 무대로 돌아오면 관객과 배우의 거리도 달라진다. 고백을 건네는 작품이라 그 거리 차이가 곧 작품의 온도 차이가 되니, 명동예술극장에서 본 관객도 TOM 2관에서 다시 볼 이유가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 이력이 선택의 단서가 된다. 낯선 1인극에 선뜻 표를 사기가 망설여진다면, 이미 몇 해에 걸쳐 여러 무대에서 다시 올려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하나의 안심 재료로 삼아도 좋다. 그리고 대학로의 가까운 극장에서 비교적 조용히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재공연의 장점이다.
04혜화동의 시선, 1인극이라는 형식의 가능성
혜화동이 이 소식에서 주목하는 것은 형식이 가진 가능성이다. 혼자 90분을 끌고 가는 1인극은 보통 배우의 해석이 작품의 중심에 놓인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만든 사람이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배우에게 역할을 넘기는 구조를 택했다. 작품이 한 사람의 몸에서 독립해 다른 몸을 거쳐도 유지되는지를 보여 줄 기회가 된다.
원작이 던지는 질문도 지금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남을 판단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 앞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누구나 다리 위에서 소리를 듣고도 그냥 지나친 순간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불편한 공감이 이 작품의 바탕에 있다. 연극은 그 공감을 객석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직접 건넨다.
객석이 청자가 되는 90분은 보는 시간이라기보다 응답을 미루는 시간에 가깝다. 극장에서 끝내지 못한 대답은 집에 가는 길과 다음 날의 대화로 이어진다.
05관람 전에 준비해 두면 좋은 것
예매 전에는 판매처에서 일정과 회차를 다시 확인하자. 어떤 배우의 회차를 볼지 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두 배우를 모두 보고 싶다면 날짜를 나눠 예매하는 방법이 있다. 한 번만 본다면 어느 쪽이든 같은 대본을 만나게 되니 취향보다 일정에 맞춰 고르는 것도 괜찮다.
처음 가는 관객이라면 소설을 미리 읽어도 좋고, 읽지 않고 가도 괜찮다. 읽고 가면 클라망스가 언급하는 사건의 무게를 더 일찍 알아챌 수 있고, 읽지 않고 가면 그가 어디서 어디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낯선 사람의 귀로 따라갈 수 있다. 무엇이 맞는다고 할 수 없으니, 극장에 가기 전의 취향대로 선택하자.
공연을 보고 나서는 같이 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 보자. 클라망스를 믿었는지, 어느 대목에서 불편했는지, 객석에서 어떤 침묵이 있었는지를 말하다 보면 90분의 고백이 오래 남는다. 공연이 끝나면 소설의 첫 장을 다시 펼쳐 보는 것도 좋은 마무리다.
- 더뮤지컬, 「1인극 <전락>, 10월 재공연 손상규 연출작을 윤나무 이동휘가 잇는다」, https://www.themusical.co.kr/News/Detail?num=14748
- 위키피디아, The Fall (Camus novel), https://en.wikipedia.org/wiki/The_Fall_(Camus_nov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