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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타임26.09.108분 읽기

페미니즘은 실패했다고 말하는 입은 누구인가, 연극 <트로피 보이즈> 한국 라이선스 초연

연극 트로피 보이즈 한국 라이선스 초연 기사에 실린 사진 · 사진 제공 씨일공일
원 출처
더뮤지컬

토론대회 결승을 한 시간 앞둔 명문 사립고 남학생들이 있다. 이들이 준비하는 논제는 페미니즘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승에 대한 집착이 커질수록 그동안 감춰 뒀던 특권의식과 위선이 하나씩 드러난다. 호주에서 시작해 뉴욕을 거친 연극 <트로피 보이즈>가 2026년 10월 27일부터 12월 6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4관에서 한국 라이선스 초연을 연다.

이 작품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논제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판에서는 여성 배우 네 명이 남학생 캐릭터 전원을 연기한다. 자극적인 논제를 말하는 입을 여성 배우에게 쥐여준 설계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그 설계가 말의 내용과 말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거리를 만드는지 보는 것이 이 공연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01호주에서 뉴욕까지, 이 작품이 걸어온 길

<트로피 보이즈>는 2022년 호주 멜버른에서 초연했다. 이 초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호주 연극상인 그린룸 어워즈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다. 여기서 말하는 그린룸 어워즈는 호주 연극계의 시상식으로, 우리 웹진 그린룸과 이름만 같을 뿐 별개다.

이후 수상 이력이 이어진다. 2024년 시드니 시어터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작상을 받았고, 같은 해 브로드웨이 월드 호주 어워즈에서 멜버른 최우수 신작 연극상을 받았다. 시드니와 멜버른, 서로 다른 도시의 시상식에서 신작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한 도시의 화제로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이력은 이 작품이 화제성뿐 아니라 작품의 짜임새로도 인정받았다는 근거가 된다.

작품은 이후 뉴욕으로 건너갔다. 오프브로드웨이의 로버트 W. 윌슨 MCC 시어터 스페이스에서 2025년 6월 24일 개막했다. 연출은 다냐 테이머, 극작은 에마누엘 마타나다. 2025년 여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이 작품은 현지 관객과 평단을 처음 만났다.

02뉴욕 평단은 이 작품을 어떻게 봤나

뉴욕 공연을 다룬 NY 시어터 가이드의 조 지에미아노위츠 기자는 2025년 6월 25일 리뷰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소년들을 연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남자를 연기하려고 연기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라고 짚은 대목이 눈에 띈다. 같은 리뷰는 구성이 일부 들쭉날쭉하다는 단서도 달았다. 칭찬과 아쉬움이 함께 담긴 평이다.

이 한 줄의 평은 작품의 설계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소년들의 과장된 남성성은 진짜가 아니라 연기된 것이라는 점이 곧 풍자의 칼날이 된다. 남학생을 흉내 내는 배우의 몸이 보일 때 관객은 남성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출된 모습인지를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뉴욕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약 70분이었다.

연극 트로피 보이즈 공식 소개 이미지, 트로피와 소품이 놓인 사물함
연극 트로피 보이즈 공식 소개 이미지, 트로피와 소품이 놓인 사물함 · KOPIS 공연예술통합전산망

03한국 초연을 만드는 사람들

한국 초연의 연출은 송현정이, 번역과 각색은 배서영이 맡았다. 기획은 씨일공일이며 프로듀서는 최수명이다. 번역과 각색을 한 사람이 맡았다는 점은 이 작품에서 중요하다. 토론이라는 형식 속에서 오가는 말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 한국어로 옮겨진 말의 리듬과 뉘앙스가 공연의 질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캐스팅은 오웬 역에 권소현과 제이민, 재러드 역에 고은영과 정가희, 스콧 역에 김별과 전해주, 데이비드 역에 권슬아와 이아진이 이름을 올렸다. 오웬, 재러드, 스콧, 데이비드 네 역할이 모두 두 명씩 짝을 이룬다.

이 네 사람은 한 팀으로 결승을 향해 달리는 인물들이라, 한 역의 배우가 바뀌면 팀의 합과 말이 오가는 속도도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인물을 서로 다른 배우로 볼 수 있다는 뜻이고, 두 번 보면 같은 대사가 다르게 읽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번만 본다면 좋아하는 배우의 날짜를 고르면 된다. 일정과 회차는 예매 전에 판매처에서 다시 확인하자.

04왜 여성 배우가 남학생을 연기하는가

한국판에서 여성 배우 네 명이 남학생 캐릭터 전원을 연기한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다. 소재만 보면 페미니즘은 실패했다는 논제가 곧바로 불편함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불편함은 의도된 것이다.

작품은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여성 배우의 몸으로 보여 줌으로써, 말의 내용과 말하는 사람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벌려 놓는다.

우리가 이런 구조를 극장에서 만날 때 던져 볼 만한 질문이 있다. 웃음이 터지는 지점은 어디인가. 웃음이 멈추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리고 같은 말을 남학생의 몸에서 들었다면 같은 감정이었을까. 이 질문을 안고 가면 공연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시간으로 바뀐다.

연극 트로피 보이즈 공식 소개 이미지, 타이틀 카드
연극 트로피 보이즈 공식 소개 이미지, 타이틀 카드 · KOPIS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여성 배우가 남학생을 연기할 때 관객은 두 겹의 시선을 갖게 된다. 인물의 과시와 배우의 관찰이다. 배우는 흉내를 내는 동시에 흉내 내는 대상을 바라보고, 그 사이에서 풍자가 생긴다. 웃음이 터질 때 그 웃음이 인물을 향한 것인지 구조를 향한 것인지 한 번쯤 의식해 보면 공연이 한층 깊이 읽힌다. 예상은 접어 두고 막이 오른 뒤 몸으로 느끼는 거리감을 믿어 보자.

참고로 뉴욕 공연에서도 여성과 논바이너리 배우가 소년들을 연기했다고 리뷰는 전한다. 성별 구성은 공연마다 다르므로, 한국판은 한국판의 구성으로 따로 이해하는 편이 안전하다.

05뉴욕 무대의 얼굴들과 번역의 몫

뉴욕 공연을 연출한 사람은 다냐 테이머다. 출연진은 네 명이었고, 그 가운데에는 극작가 에마누엘 마타나가 직접 이름을 올렸다. 글을 쓴 사람이 무대 위에서 소년들의 말을 몸으로 옮겼다는 뜻이다. 이 구성은 토론대회 장면의 말이 단순한 대본이 아니라 쓴 사람이 가장 잘 아는 호흡으로 던져졌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판은 연출을 송현정이, 번역과 각색을 배서영이 맡았으니, 말의 호흡을 만드는 일이 번역과 각색에 크게 기대는 구조다.

멜버른과 뉴욕, 서울의 관객은 모두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다. 같은 논제도 도시마다 다른 대목에서 불편해지고 다른 대목에서 웃음이 터졌을 것이다. 이번 한국 초연에서 번역과 각색이 맡은 일은 그 배경의 차이를 메우는 것이다.

어떤 말은 그대로 옮기고 어떤 말은 한국 관객의 귀에 맞게 바꿨을지, 막이 오르면 확인해 볼 수 있다. 서울 객석이 어느 대목에서 웃고 어느 대목에서 조용해지는지가 이 작품이 거쳐 온 도시의 목록에 새 페이지를 쓰게 된다.

트로피와 메달 정물 사진. 작품 사진이 아니라 토론 대회 우승을 떠올리게 하는 연상 이미지
트로피와 메달 정물 사진. 작품 사진이 아니라 토론 대회 우승을 떠올리게 하는 연상 이미지 · Pexels kaboompics

06처음 라이선스 연극을 보는 관객에게

해외 작품을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낯선 설정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부담을 덜어 주는 요소가 있다. 이야기의 시간이 토론대회 결승 한 시간 전으로 짧게 잡혀 있고, 모두가 같은 목표인 우승을 향해 움직인다.

복잡한 배경 지식 없이도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따라갈 수 있는 구조다. 학교와 토론이라는 소재도 한국 관객에게 낯설지 않다.

그러니 사전에 공부하고 가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아도 좋다. 대신 극장에 들어서기 전 한 가지만 생각해 보자. 내가 학교나 직장에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을 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삼켰는지다. 이 질문 하나가 있으면 무대 위 소년들의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경험과 겹치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07혜화동의 시선, 논쟁을 설계하는 방식

혜화동은 이 작품이 논쟁적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한다. 자칫 불편해질 수 있는 논제를 정면으로 가져와 쓰면서도, 그 논제를 말하는 입을 여성 배우에게 맡긴 설계가 풍자의 날을 세운다. 소재 자체를 피하는 대신, 소재를 보여 주는 방식을 바꾼 셈이다. 이런 작품은 관객이 어떤 입장이든 한 번쯤 자신의 자리를 점검하게 만든다.

호주에서 매진을 기록하고 뉴욕까지 건너간 작품이 한국 객석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불러일으킬지, 지금 내다보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라이선스 작품이 우리 말과 우리 배우로 다시 만들어질 때 어떤 해석이 더해지는지가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번역과 각색이 한국 관객의 일상과 어디서 만나는지를 지켜보자. 토론대회 결승 한 시간 전이라는 짧고 숨 가쁜 시간 설정은 번역을 거쳐도 잘 줄어들지 않는 긴장이라, 한국 관객에게도 금세 닿을 가능성이 높다.

08관람 전 체크 포인트

한국판 러닝타임은 판매처에서 확인하고 귀가 계획을 짜자. 같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공연이 끝난 뒤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남겨 두면 좋다. 이 작품은 보고 나서 의견이 갈릴수록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진다. 혼자 가더라도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장면 하나를 적어 두자. 그 장면이 이 작품이 내게 어떤 질문을 남겼는지를 알려 줄 것이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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