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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24.10.0210분 읽기

60년, 그리고 100년 만의 귀환. 베를린 국립오페라는 왜 잠든 두 작품을 깨웠나

2024년 5월 시즌 발표 행사에서 시즌 책자를 든 두 인물, 베를린 국립오페라 · Photo: Peter Adamik / Staatsoper Berlin
원 출처
Seen and Heard International

레퍼토리 극장이 새 시즌의 문을 여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 검증된 명작을 화려하게 내놓거나, 오래 쉰 작품을 꺼내 극장의 새 얼굴로 삼거나. 2024년 가을 베를린 국립오페라(Staatsoper Unter den Linden)는 두 번째 길을 갔다.

10월 2일 베르디의 「나부코」, 한 달 뒤인 11월 10일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차례로 막을 올렸다.

두 작품은 이 극장에서 한참 떠나 있었다. 「나부코」는 60여 년 만의 첫 상연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100년이 넘어 돌아온 무대다. 극장 지도부가 바뀐 첫 시즌에 왜 하필 이 두 편이었을까. 작품이 걸어온 길과 이번 프로덕션을 차례로 따라가 보면 답의 윤곽이 보인다.

01새 얼굴과 함께 열린 시즌

2024년 5월 시즌이 발표될 때 극장의 지도부는 엘리자베트 소보트카 예술감독과 크리스티안 틸레만 음악감독이었다. 틸레만은 2024년 9월 1일부로 다니엘 바렌보임의 뒤를 이었다. 바렌보임은 1992년 음악감독에 임명된 뒤 30년 넘게 극장을 이끌다 2023년 1월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났다.

영국의 문예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RB) 블로그에 따르면 시즌의 주제는 「단순한 진실을 경계하라」였고 두 사람이 함께 짰다. 바렌보임은 「나부코」를 지휘한 적이 없다. 그러니 이 작품은 한 시대가 끝나고 다음 시대가 시작되는 자리에서, 이전 체제가 손대지 않은 레퍼토리를 새 체제가 처음 꺼내 든 사례이기도 하다. 개막 작품으로 올린다는 건 극장이 어떤 노래를 먼저 부르고 싶은지 밝히는 일이니까.

시즌 전체를 보면 이 두 편이 얼마나 눈에 띄는지 더 분명해진다. 같은 시즌에는 「토스카」「투란도트」「마술피리」「카르멘」「라 트라비아타」 같은 익숙한 레퍼토리가 줄지어 있었다. 신작 가운데 「나부코」와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장 앞쪽에 놓였다. 안전한 선택지가 가득한 편성표 위에서 먼저 낯선 이름을 내세운 셈이다.

02「나부코」, 한 곡의 합창이 가린 작품

「나부코」는 1842년 3월 9일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초연됐다. 원제는 「나부코도노소르」, 대본은 테미스토클레 솔레라가 썼다. 성서의 열왕기하·예레미야·애가·다니엘에 1836년 희곡이 더해졌고, 같은 해 라 스칼라에서 올린 발레가 대본에 더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베르디는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줄거리의 뼈대는 이렇다. 기원전 587년, 바빌론의 왕 나부코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끌고 간다. 나부코의 첫째 딸로 알려진 아비가일레는 왕이 광기에 빠진 사이 왕좌를 차지한다. 정신이 돌아온 나부코는 이스라엘인을 풀어주고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고 맹세하고, 아비가일레는 독을 마신다. 권력, 신앙, 가족이 한 줄에 엮여 있는 이야기다.

이 오페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곡이 합창 「가라, 사념이여」다. 이탈리아 통일운동(리소르지멘토)과 이어서 기억되고, 베르디의 장례식에서도 군중이 이 노래를 불렀다. 흥미로운 것은 초연 당시 관객이 앙코르를 요구한 곡이 이 합창이 아니라 다른 합창 「이멘소 예호바」였다는 최근 연구다. 신화가 된 합창이 작품 전체를 덮어 버린 건 후대의 일일 수 있다는 뜻이다.

운터 덴 린덴의 베를린 국립오페라 건물, 2024년 촬영 파일
운터 덴 린덴의 베를린 국립오페라 건물, 2024년 촬영 파일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비슷한 시선을 베를리너 차이퉁의 페터 위얼링이 공연 직후 서평 도입부에서 내비쳤다. 스물일곱 살의 베르디가 이 작품으로 돌파한 것이 놀랍다고 하면서도, 훗날 베르디다운 면모가 적고 인물 구도가 극적이지 않으며 유명한 합창 하나가 작품을 떠받친다고 짚었다.

제목은 「수수께끼 같은 성공」이었다. 도입부만으로도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읽힌다. 유명한 합창 하나가 작품을 떠받치는 구조에서는, 합창 바깥의 장면들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연출의 과제가 된다.

공연사에도 흔적이 있다. 런던에서 첫 상연이 이뤄졌을 때 성서 속 인물을 무대에 올리는 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제목이 「니노」로 바뀌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이 작품을 레퍼토리에 올린 것은 1960/61 시즌부터다. 사랑받는 합창과 까다로운 연출 과제를 함께 안고 있는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03단테의 무대, 네트렙코의 아비가일레

이번 프로덕션은 에마 단테가 연출하고 베르트랑 드 빌리가 지휘했다. 나부코는 루카 살시, 아비가일레는 안나 네트렙코가 맡았고 이반 마니리, 마리나 프루덴스카야, 르네 파페 등이 함께했다. 공연은 10월 2일부터 26일까지였다.

LRB 블로그의 올리비아 조반니티가 전한 무대는 추상적이었다. 의상은 시대복과 현대복이 섞여 있고, 무대는 뉴욕 허드슨 야즈의 조형물 「베슬」을 본떴다. 노래하지 않는 배우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검은 코트를 뒤집어 붉은 안감을 드러내고, 「가라, 사념이여」 장면에서는 소녀의 주검이 옮겨진다.

연출가 본인은 지금의 분쟁이 오페라로 옮기기에는 너무 복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런 이미지들이 정치적 대응을 구체적으로 짚지 않아 효과가 약하다고 평했다.

독일 일간지 쪽에서도 쥐트도이체 차이퉁이 단테의 연출에 불만을 표했다는 요약이 전해진다. 반응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다는 건, 이 작품을 지금 무대에 올리는 일이 그만큼 민감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네트렙코의 캐스팅은 별도의 화제였다. 그녀는 2022년 푸틴 지지 전력과 침공 직후의 대응 문제로 여러 일정에서 빠졌고, 복귀 후 이 극장 무대에서 항의를 받았다고 LRB는 전한다. 베를리너 차이퉁도 이 역에 대한 항의를 보도했다.

그 사안의 시비는 여기서 따지지 않는다. 다만 관람 전에 알아 두면, 같은 합창 장면이 객석에서 어떻게 들렸는지 공연 후기를 읽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04「로미오와 줄리엣」, 파리에서 태어나 100년 만에 돌아오다

두 번째 작품은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쥘 바르비에와 미셸 카레가 프랑스어 대본을 쓰고, 1867년 4월 27일 파리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초연됐다. 줄리엣은 마리 카롤린 미올랑 카르발류, 로미오는 피에르쥘 미쇼가 불렀다.

1961년에 촬영된 베를린 국립오페라 운터 덴 린덴 외관
1961년에 촬영된 베를린 국립오페라 운터 덴 린덴 외관 · Photo: Manfred Niermann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5막 오페라이고, 주인공 두 사람이 나누는 네 번의 이중창과 줄리엣의 왈츠 아리아 「나는 살고 싶어요」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출발은 화려했다. 파리 박람회를 찾은 방문객들 덕에 흥행했고, 곧 풍자극이 나올 만큼 화제였다. 1873년 1월 20일 오페라코미크 레퍼토리에 들어가 14년간 391회 공연됐고, 1888년 11월 28일에는 파리 오페라로 옮겨 아델리나 파티와 장 드 레스케가 불렀다.

런던 첫 상연은 1867년 7월 11일, 뉴욕은 1867년 11월 15일이었다. 1912년에는 첫 전곡 녹음도 나왔다. 초연 직후부터 곳곳으로 퍼진 작품이다.

그런 작품이 베를린 국립오페라에서는 100년이 넘게 쉬었다. 분명한 것은 이번 복귀가 이 극장에는 거의 신작에 가까운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연출 마리암 클레망은 이 극장에서 처음 연출을 맡았고, 지휘 스테파노 몬타나리 역시 극장 데뷔였다. 오케스트라는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었다.

05가문의 싸움을 세대의 싸움으로

클레망의 해석은 연인의 젊음에 초점을 맞춘다. 가문 간의 반목을 세대 갈등으로 바꿔, 로미오와 줄리엣이 부딪히는 벽을 어른들의 규칙과 청춘 사이의 대립으로 읽는다. 무대와 의상은 율리아 한젠, 조명은 울릭 가드, 영상은 세바스티앵 뒤푸에, 안무는 마티외 길리몽이 맡았다.

음악 전문 매체 Bachtrack은 이 공연을 「핑크를 사랑한 펑크」라는 제목의 평으로 다뤘다. 필자 체나이다 데 오브리스의 요약에 따르면 연출은 이야기를 오늘날로 옮겨, 반목하는 가문과 계층의 벽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궁금하다면 Bachtrack 원문에서 평 전문을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한다.

줄리엣 역은 처음 발표된 아이다 가리풀리나 대신 엘사 드레이지히와 마리아 코카레바가 나눠 불렀다. 로미오는 페트르 네코라네츠, 프레르 로랑은 니콜라 테스테가 맡았다. 공연은 2024년 11월 10일부터 2025년 6월 21일까지 여러 캐스트로 이어졌다. 공연 기간이 이렇게 길어 회차마다 관람 후기의 캐스트가 다를 수 있다.

06이 무대를 지탱하는 극장

두 작품을 되살린 곳이 어떤 극장인지도 알아 둘 만하다. 베를린 국립오페라 건물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명으로 크노벨스도르프가 설계해 1742년 12월 7일 문을 열었다. 280년 넘게 이어 온 극장이지만 자주 무너졌다.

1843년 8월 18일 화재가 났고, 1941년 4월 9일과 10일 사이 공습으로 내부가 무너졌다. 1942년 12월 12일 다시 열었으나 1945년 2월 3일의 공습으로 정면만 남았다. 1951년부터 1955년까지 재건을 거쳐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로 다시 문을 열었다.

베를린 운터 덴 린덴 국립오페라 건물, 2018년 촬영
베를린 운터 덴 린덴 국립오페라 건물, 2018년 촬영 · Photo: A.Savin / Wikimedia Commons (FAL)

가장 최근의 큰 일은 2009년에 시작해 2017년에 마무리된 보수공사다. 재개관일은 2017년 10월 3일이다. 불타고 무너지고 다시 지어진 이 건물이 수십 년 동안 외면한 작품을 다시 불러냈다는 사실은, 극장이 잊힌 것을 되살리는 일에 익숙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준다.

07혜화동의 시선, 잠든 레퍼토리를 깨운다는 것

대학로 무대에서 잊힌 희곡이나 오래 쉰 창작 뮤지컬이 다시 올라오는 일은 낯설지 않다. 그래서 이 소식은 규모가 다를 뿐 우리에게도 익숙한 질문을 던진다. 오래된 작품을 다시 꺼낼 때, 극장은 무엇을 새로 말하려는가.

베를린의 경우 답은 연출에 있었다. 「나부코」는 현대의 분쟁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쓰되 구체적인 지목은 피했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대 갈등이라는 오늘의 언어로 옮겼다. 두 방식 모두 앞서 본 대로 평이 엇갈렸다.

그러나 이 엇갈림 자체가 오래 쉰 작품이 지금의 관객 앞에 선다는 증거다. 비슷한 기획을 하는 소극장 창작자라면 두 연출의 선택지를 참고해 볼 만하다.

반대로 이 소식을 그대로 한국 무대에 옮길 수는 없다. 국내에서 이 소식을 즐기는 가까운 방법이 있다. 두 작품은 모두 널리 알려진 음악이 있다. 「가라, 사념이여」와 「나는 살고 싶어요」를 먼저 들어 보고 나서 공연 후기를 읽으면, 어떤 장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

08관람 포인트와 앞으로 지켜볼 것

해외 공연 소식은 직접 보기 어려운 만큼 읽는 방법이 중요하다. 이번 두 작품에서 다음 세 가지를 짚어 보시길 권한다.

첫째, 합창 장면이다. 「나부코」에서는 LRB 평이 짚은 「가라, 사념이여」 장면의 연출을 눈여겨보면 좋다. 둘째, 이중창의 배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네 번의 이중창이 뼈대라 연출이 그 장면들에서 세대 갈등을 어떻게 풀었는지 보면 해석의 방향이 읽힌다.

셋째, 캐스트다. 두 작품 모두 공연 기간이 길어 회차마다 출연진이 달랐다. 어떤 회차의 후기인지 확인하고 읽는 것이 오독을 줄인다.

「나부코」가 2026년 극장의 야외 중계 프로그램 「모두를 위한 국립오페라」와 연결돼 다시 거론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 번 되살린 작품이 레퍼토리로 자리 잡는지는 재공연이 말해 준다. 앞으로 이 두 프로덕션이 몇 번 더 무대에 서는지, 그때 해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자.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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