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혜화동
홈/에디트
에디트
여운
홈/에디트
에디트
여운26.10.158분 읽기

대학로 극장 지도, 큰 무대와 작은 무대 사이

네온 간판이 켜진 밤의 대학로 거리 · Wikimedia Commons · Gipe0001 · CC BY-SA 3.0

처음 대학로에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작품이 아니라 극장 찾기다. 예매 앱에는 극장 이름이 수십 개 뜨는데, 어느 극장이 어떤 성격인지는 한 줄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같은 연극 한 편이라도 육백 석 대극장에서 보는 것과 객석이 코앞인 지하 소극장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작품 이야기가 아니라 극장 이야기다. 대학로 극장이 크게 어떤 갈래로 나뉘는지, 극장이 열고 닫히는 동안 이 거리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지도처럼 펼쳐 본다. 읽고 나면 다음 공연을 고를 때 극장 이름이 단서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01이 동네에 극장이 몇 개나 있을까

대학로 일대의 공연장은 모두 259곳에 이른다. 종로구가 249곳으로 대부분이고, 성북구 9곳과 용산구 1곳이 섞여 있다. 이 중 폐관한 곳이 23곳이고, 지금 문을 열고 있는 곳은 236곳이다. 같은 건물 안의 여러 관이 따로 세어지기도 해서 건물 수와 공연장 수가 정확히 같지는 않다. 그래도 한 동네에서 이만한 수의 무대가 동시에 돌아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극장 이름만 보고 가기보다 오늘 공연 정보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공연 목록에서 공연 상태가 공연중인 작품을 고르면 그날 열려 있는 극장만 만나게 된다.

02큰 극장은 공공이 맡는다

대학로의 큰 무대는 대체로 공공의 몫이다. 마로니에공원 안에 있는 아르코예술극장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지금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로 문을 열었고, 600석 대극장과 150석 소극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극장 가운데 하나라는 위치는 변함이 없다.

2022년 7월에는 서울문화재단이 대학로에 공공극장 쿼드를 열었다. 블랙박스 형태라 무대와 객석을 공연마다 다르게 짤 수 있고, 좌석은 구성에 따라 200석에서 250석 사이로 달라진다. 서울연극제나 다원예술 같은 실험적인 공연을 받아 주는 극장이다.

객석 배치가 바뀌는 극장에서는 같은 작품도 앉은 자리에 따라 보이는 장면이 달라지니, 예매할 때 좌석 배치도를 한 번 열어 보시길 권한다.

가장 최근에 생긴 공공 극장은 아르코꿈밭극장이다. 학전이 문을 닫고 125일 뒤인 2024년 여름에 같은 자리에 문을 열었고, 169석 규모에 어린이와 청소년 공연을 중심으로 한다. 학전이 아동극을 꾸준히 올려 온 유산을 잇겠다는 운영 방침이 있다고 한다. 가족 단위로 대학로를 찾는다면 가장 먼저 눈여겨볼 만한 곳이다.

서울연극센터 건물 외관
서울연극센터 건물 외관 · Wikimedia Commons · Motoko C. K. · CC0

03작은 극장이 만든 1세대

대학로를 연극의 거리로 만든 건 큰 극장이 아니라 작은 극장이었다. 극장 목록에서 개관 연도가 남아 있는 곳을 세어 보면 1980년대에 문을 연 곳이 4곳, 1990년대가 12곳, 2000년대가 44곳, 2010년대가 73곳, 2020년대가 6곳이다.

2000년대 이후에 문을 연 극장이 압도적으로 많다. 오늘 우리가 가는 소극장 대부분이 사실은 비교적 젊은 극장이라는 뜻이다.

그 가운데 1980년대의 이름이 눈에 띈다. 1984년에 문을 연 파랑새극장은 샘터파랑새극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1986년에는 바탕골소극장이, 1987년에는 연우소극장이 문을 열었다. 이 극장들이 대학로 소극장 생태계의 1세대다.

1993년에는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와 정보소극장이 열렸다. 1990년대 초에 실험적인 시도가 한꺼번에 모여든 셈이다. 이 극장들을 지금 찾아가서 어떤 작품이 걸려 있는지 보는 일 자체가 이 거리의 오래된 기억을 만나는 일이다.

2020년대에 문을 연 극장이 6곳이나 목록에 오른다는 점도 흥미롭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극장이 문을 닫은 시기에도 새로 불을 켠 무대가 있다는 뜻이다. 거리가 줄어드는 중이라고만 읽으면 반쪽이고, 닫는 곳과 여는 곳이 동시에 있는 거리라고 읽는 편이 지금의 대학로에 가깝다.

폐관한 극장도 지도의 일부다. 2002년에 문을 연 설치극장 정미소는 설치미술과 공연을 엮으려 한 극장이었지만 지금은 문을 닫았다. 그 이름이 폐관 표시와 함께 남아 있다는 것은, 이 거리가 누군가의 실험을 한동안 품었다가 보내 주었다는 흔적이다.

04학전이 문을 닫은 날

2024년 3월 15일 학전이 폐관했다. 1991년 같은 날 문을 연 극장이 정확히 33년을 채우고 닫은 것이다. 지하철 1호선은 이곳에서 4,257회 공연되었고 누적 관객은 73만 명이었다. 학전이 닫았을 때 많은 사람이 대학로 소극장의 위기를 말했다.

폐관의 이유는 코로나19의 타격과 김민기 대표의 건강이 겹친 것이었으니, 한 극장의 사정이 거리 전체의 신호는 아니다. 다만 상징의 무게만큼은 거리 전체가 느꼈다.

샘터파랑새극장 외벽 간판
샘터파랑새극장 외벽 간판 · Wikimedia Commons · JaehyeonYou · CC BY 3.0

그럼에도 이 사건이 거리에 남긴 울림은 크다. 한 극장의 자리가 비는 순간 곧바로 공공 극장이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이 거리에서 작은 극장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 준다. 간판은 바뀌었지만 이 자리가 학전이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가능하다면 꿈밭극장에서 한 편을 보고 나오면서 이 자리가 무엇이었는지 한 번 떠올려 보시길 권한다.

05간판은 바뀌어도 자리는 남는다

공연 목록에서 극장 이름을 읽다 보면 괄호 안에 구라는 글자가 붙은 극장이 유난히 많다. 봄날아트홀은 예전에 아리랑소극장이었고, 씨어터조이는 마당세실극장이었다. 극장 온은 CJ아지트 대학로라는 이름을 거쳤고, 지인시어터는 알과핵 소극장이었던 자리다.

제이원 씨어터는 서완소극장과 씨어터고리를 거쳤으며, JS아트홀은 고스트씨어터와 다소니씨어터라는 이전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이 이렇게 자주 바뀐다는 것은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운영자가 바뀌어도 건물과 무대는 이어지니, 극장은 간판보다 자리가 오래 가는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전 이름으로 기억하던 극장을 찾을 때는 지도 앱에 옛 이름을 그대로 넣어 보자. 구 이름이 검색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새 이름을 몰라도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다.

06규모로 읽는 극장 고르기

극장을 고를 때는 좌석 수만 알아도 절반은 해결된다. 대극장급은 육백 석 안팎이어서 무대 전체를 한눈에 보는 감상에 어울린다. 이백 석 안팎의 중극장은 무대와 객석의 균형이 좋아 연극과 뮤지컬을 가리지 않는다. 백 석 아래의 소극장은 배우의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라 대사와 표정이 전부인 작품에 알맞다.

반대로 소극장에서는 앞줄이 때로 무대 바닥과 거의 맞닿아 있어서, 처음 가는 사람에게는 두세 번째 줄이 오히려 편하다.

공연 정보 사이트에 좌석 배치도가 있으면 한 번 열어 보자. 없다면 예매처 후기에서 시야와 관련된 글을 한 줄이라도 찾아보면 실패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

벽돌 건물이 둘러싼 마로니에공원 광장
벽돌 건물이 둘러싼 마로니에공원 광장 · Wikimedia Commons · Seefooddiet · CC BY-SA 4.0

07작은 극장이 버티는 방식

작은 극장의 가장 큰 고민은 고정비다. 2015년 서울신문 보도에서 이미 대학로 소극장의 월세는 평균 400만~500만 원대였다. 객석 백 석도 못 채우는 공간이 매달 이만한 몫을 먼저 버텨야 한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사람의 문제도 겹쳤다. 극단 활동가들이 플랫폼 노동 같은 다른 일로 옮겨 갔고,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르포가 있었다. 업계에서는 스타 배우가 나오거나 특정 소재를 다루는 공연이 아니면 관객을 모으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반대로 소극장협회는 해마다 대학로거리공연축제 D.FESTA를 열어 관객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작은 극장이 살아남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결국 관객이 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같은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큰 극장의 기획 공연 한 편을 본 달에는, 작은 극장 한 편도 같이 보는 것이다.

08이번 주에 가 볼 만한 작은 극장 세 곳

지금 공연 중인 작품 가운데 작은 극장의 작품 몇 개를 골랐다.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라면 북극곰 소극장에서 올라가는 연극 강아지똥이 있고, 2026년 9월 2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오래 이어지는 창작극이 궁금하다면 아트포레스트 1관의 늘근도둑이야기가 2022년부터 오픈런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짧게 끝나는 기획전을 보고 싶다면 극장 동국의 연출가전이 10월 18일까지 이어진다.

극장 한 곳을 더 찾는다면 공간아울을 기억해 두시라. 이곳에서는 2026 D.FESTA 소극장축제 참가작이 10월 17일과 18일에 올라가고, 열린극장에서도 10월 20일부터 이어지는 축제 참가작이 있다.

축제 기간에는 평소 이름을 모르던 소극장이 한꺼번에 얼굴을 내밀기 때문에, 극장 지도를 눈으로 익히기에 가장 좋은 때다.

처음 가는 극장이라면 공연 시작 삼십 분 전에 도착해 극장 입구와 로비를 둘러보시라. 극장의 성격은 무대에서 시작되기 전에 로비에서 먼저 드러난다. 가 보고 나서 마음에 든 극장이 생기면 그 극장의 다음 공연을 하나 더 예매해 보자. 대학로는 한 극장을 두 번 가 본 사람에게 비로소 친해지는 동네다.

참고한 자료
다음 글 · 여운혜화동이라는 동네의 시간 →

에디트의 다른 글

전체 →
여운두 밤만 켜지는 괴담여운첫 회, 나타샤라는 이름여운아홉 번째, 가장 아름다운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