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끝이 닿기 전의 침묵을 무대로: 극단 소년이 창단 10주년에 꺼낸 펜싱 연극 <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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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뮤지컬
펜싱 경기를 본 적이 있다면 이런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두 선수가 거리를 재고, 서로의 눈을 보고, 칼끝이 닿기 직전에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 짧은 침묵 안에 승부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극단 소년이 창단 10주년 기념작으로 내놓은 연극 <투셰>는 이 침묵을 무대 위로 가져온다. 공연은 11월 28일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개막해 2027년 1월 24일까지 이어진다.
01이번 소식의 핵심
먼저 제목을 풀어 보자. 투셰는 칼을 맞대는 동작을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누군가와 맞닿는 순간을 작품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만으로도 이 이야기가 관계를 다룬다는 짐작이 간다. 이 작품은 2015년에 창단한 극단 소년이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내놓았다. 극단의 한 장을 닫는 기념작이면서, 다음 장을 여는 첫 작품이기도 하다.
연출은 홍단비가 맡았다. 러닝타임과 관람 연령은 예매 페이지에 순서대로 올라올 예정이니, 가족이나 아이와 함께 볼 계획이라면 예매 전에 관람 연령부터 살펴보자. 두 달 가까운 공연 기간 덕분에 연말 모임이나 겨울방학 일정에 맞춰 날짜를 고르기도 쉽다.
02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두 형제
제작진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펜싱을 소재로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두 형제의 삶과 성장을 그린다.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설명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이긴다와 진다가 중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대개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구조를 취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승부는 배경이고, 중심은 한 사람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형제라는 설정도 그 방향을 돕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같은 분야에서 겨룰 때 생기는 복잡한 감정은 경기 결과보다 오래 남는다. 응원과 질투, 자랑스러움과 서러움이 같은 순간에 섞인다.
그래서 이 작품을 스포츠 연극으로만 기대하고 가면 조금 다른 맛을 볼 수도 있다. 시합 장면의 박진감을 기대하기보다, 시합 전후에 두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삼키는지에 귀를 열어 보자.
03공연을 채우는 얼굴들
출연진은 이렇게 소개된다. 건규 역은 표지훈과 허영손이 맡는다. 규태 역은 신성하와 이충호가 맡는다. 도형 역은 오원권과 장원혁이다. 코치 외 역은 이예준과 임동진, 아빠 외 역은 김기주와 김종현이다.

건규와 규태 두 역은 각각 두 명의 배우가 번갈아 맡는 구조이다. 명단에 오른 배우는 모두 열 명이다. 소극장 작품에서 이 인원이 다섯 개 배역으로 나뉜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이 크다는 뜻이다. 회차별 출연자는 예매처 캐스팅 일정에서 확인하고 고르면 된다.
같은 형제를 다른 배우의 조합으로 볼 수 있다는 건 이 작품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어떤 조합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닮은 동지처럼, 다른 조합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의 라이벌처럼 보일 수 있다.
처음 본다면 마음이 가는 배우 한 명을 기준으로 회차를 고르자. 한 번 보고 나서 마음에 들었다면 다른 조합으로 한 번 더 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두 형제가 모두 더블 캐스팅이라 조합이 바뀌면 둘 사이의 온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같은 대사가 배우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 비교하는 일은 연극에서만 가능한 즐거움이다.
04무대 위에서 펜싱을 본다는 것
펜싱은 일대일로 마주 서는 종목이다. 찌르고 물러서는 동작 하나하나가 곧 상대와 주고받는 대화이다. 이런 종목을 무대 언어로 옮기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몸의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움직이지 않는 순간의 긴장이다.
관객으로서 볼 때는 두 가지에 주목해 보자. 첫째, 인물이 말을 하지 않고 서 있을 때의 거리이다. 두 사람이 어느 정도 떨어져 서 있는지가 둘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 준다. 둘째, 소리이다.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떻게 쓰이는지,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이 어디인지를 들어 보자.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에 이야기가 가장 크게 말한다. 이런 요소는 공연 전에는 알 수 없고, 객석에 앉았을 때에야 확인된다. 그러니 기대를 크게 열어 두고 가길 권한다.
05포스터가 먼저 건네는 질문
포스터를 한번 천천히 들여다보자. 텅 빈 펜싱 연습장 바닥에 투구 하나와 검 두 자루가 놓여 있고, 위쪽에는 세계가 깨질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아느냐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경기가 끝난 뒤의 정적일 수도, 시작되기 전의 정적일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읽히는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 문구는 작품이 가려는 방향을 살짝 알려 준다. 승패의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야기라는 암시이다. 이 문구에 대한 답을 객석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 공연을 보고 나서 포스터를 다시 보면, 처음과는 다른 장면으로 읽힐 것이다.
06한 사람이 여러 얼굴을 맡는 구조
캐스팅 명단에는 코치 외, 아빠 외라는 표기가 있다. 한 배우가 주된 역할 외에 다른 인물도 함께 맡는다는 뜻으로 읽힌다. 소극장 연극에서는 흔한 구성이다. 같은 배우가 코치로 서 있다가 다른 장면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나타나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
의상이나 목소리의 작은 변화로 인물을 바꾸는 장면은 소극장 연극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그 전환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를 지켜보면, 배우의 기술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형제를 둘러싼 어른들, 즉 코치와 아빠가 이야기에서 어떤 압력을 만드는지도 눈여겨보자.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의 시선은 선수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두 형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이 어떻게 겹치는지가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07극단의 10년, 낯선 소재를 고른 이유
창단 10주년 기념작으로 펜싱이라는 낯선 소재를 택한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기념작은 대개 안전한 선택을 하기 쉽다. 극단이 가장 잘하는 것, 관객이 이미 좋아하는 것을 내놓는 쪽이 안전하다. 그런데 극단 소년은 두 형제의 이야기를 스포츠의 틀에 담았다. 이 선택은 극단이 다음 10년을 어떤 방식으로 쓰려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극단 소년의 이력을 따라가 보면 이 극단이 매번 다른 이야기를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2019년에는 <소년, 천국에 가다>로 관객을 만났고, 2022년에는 <플레이백>을 무대에 올렸다. 이 글에 실린 단원 단체 사진과 전작 장면 사진도 이 두 작품 때의 기록이다.
전작을 본 적이 있다면 이번에 달라진 호흡을 비교해 볼 수 있고, 처음이라면 <투셰>가 극단과의 첫 만남이 된다.

대학로의 소극단에게 10주년은 가볍지 않은 숫자이다. 많은 극단이 생겼다 사라지는 환경에서 10년을 이어 온 극단의 기념작이라면, 응원하는 마음으로 한 번 찾아가 볼 이유가 충분하다. 작품이 마음에 든다면 극단의 이름을 기억해 두자. 다음 작품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된다.
08객석에 앉기 전, 공연장 이야기
<투셰>가 올라가는 곳은 대학로 자유극장이다. 소극장은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워서 배우의 숨소리와 작은 표정까지 전해진다. 펜싱처럼 거리감이 중요한 소재를 다루는 작품에는 잘 맞는 환경이다. 두 인물이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지, 한 걸음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가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극장 관람은 대극장과 다른 요령이 필요하다. 앞줄은 배우와 가깝지만 시선을 위아래로 옮겨야 해서 목이 피곤할 수 있고, 중간 열은 무대 전체를 편하게 볼 수 있다. 시야가 걱정된다면 예매처의 좌석 배치도를 열어 보자.
인기 회차는 빨리 마감될 수 있으니 보고 싶은 날짜가 정해졌다면 일찍 예매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09혜화동의 시선: 소극장 연극을 고르는 법
대학로에서 처음 보는 연극을 고를 때는 정보가 부족해서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기준이 세 가지 있다. 소재가 흥미로운지, 극단의 이력이 있는지, 출연진 가운데 아는 이름이 있는지이다. <투셰>는 소재가 분명하고, 10년의 이력을 가진 극단이 만들며, 출연진도 풍부하다.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편이다.
정보가 적은 작품일수록 개막 첫 주의 후기를 한두 개 살펴본 뒤 예매하는 방법도 있다. 공연 기간이 두 달 가까이 되니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개막 뒤 첫 주 후기를 확인하고 12월 일정으로 잡아도 늦지 않다.
첫째, 펜싱 경기 영상을 짧게 한 편 보고 가자. 칼이 닿는 순간의 속도와 정적을 눈에 익혀 두면 무대의 긴장이 더 크게 와닿는다. 둘째, 공연이 끝난 뒤에는 누구와 가장 닮았다고 느꼈는지 동행과 이야기해 보자. 형이나 동생, 혹은 오랜 친구와의 경험이 떠오르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이 작품이 객석에 남기는 가장 오래가는 흔적이다. 승부에서 진 사람보다 승부 곁에 있던 사람이 더 오래 기억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 더뮤지컬, 「연극 <투셰>, 펜싱 소재 형제 서사로 11월 개막…극단 소년 창단 10주년작」, https://www.themusical.co.kr/News/Detail?num=147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