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실 안에서만 벌어지는 연극이 토니상 13개 후보에 올랐다, <스테레오포닉>이 런던까지 건너간 이유

- 원 출처
- London Theatre
연극 한 편이 토니상에서 13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일은 흔하지 않다. 2024년 6월에 열린 제77회 토니상에서 <스테레오포닉>이 바로 그 일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이 작품은 대서양을 건너 런던 웨스트엔드에 닿았다.
큰 스타도 없고 익숙한 원작도 없는 연극이 어떻게 두 도시의 객석을 모두 설득했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 본다.
해외에서 연극이 어떤 방식으로 성공하는지 구경해 보는 일은 우리 공연을 보는 눈을 넓혀 준다. 한 편의 연극이 상을 받고 극장을 옮겨 가는 과정에는 작품의 힘과 시장의 구조가 함께 드러난다.
0113개 후보, 그리고 다섯 개의 트로피
<스테레오포닉>은 2024년 제77회 토니상에서 연극 부문 13개 후보에 올랐다. 런던의 공연 매체 London Theatre는 이를 희곡 부문 역대 최다 노미네이션 기록으로 전했다. 숫자만으로도 이 작품이 그해 브로드웨이에서 얼마나 큰 존재감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결과도 후보 숫자에 걸맞았다. 이 작품은 최우수 연극상, 연극 연출상(대니얼 아우킨), 연극 조연 남우상(윌 브릴), 무대디자인상, 음향디자인상까지 모두 다섯 개 부문을 받았다. 연출과 연기, 무대, 소리가 고르게 인정받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 사람의 스타 연기나 한 줄의 명대사로 이긴 작품이 아니라, 공연을 이루는 요소가 한꺼번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받지 못한 부문을 보면 작품의 성격이 더 또렷해진다. 13개 후보 가운데 8개는 트로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같은 해 연극 조명상은 다른 작품이 받았고, <스테레오포닉>은 그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는 데 그쳤다. 극본은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 목록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우수 연극상을 가져갔다는 것은, 심사하는 쪽이 대본 한 편의 완성도보다 무대에서 소리와 연기와 공간이 만나는 방식을 높이 샀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연기 부문에서 수상이 조연 남우상 한 개라는 점도 같은 방향이다. 어느 한 배우가 작품을 짊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배우가 나눠 든 연극이라는 이야기이다.
02창작진, 극본과 연출 그리고 음악
극본은 데이비드 애드미, 연출은 앞서 연출상을 받은 대니얼 아우킨이 맡았다. 두 사람 모두 2024년 토니 후보 명단에 극본과 연출 부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 팀이 같은 작품으로 두 부문 후보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대본과 무대가 서로 맞물려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음악이 곁들이는 요소가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데 있다. 오리지널 음악은 윌 버틀러가 작곡과 작사를 맡았고, 편곡에는 윌 버틀러와 저스틴 크레이그의 이름이 올랐다. 작곡가가 편곡에도 직접 참여했다는 점은 곡이 대본 바깥에서 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극의 흐름 안에서 자랐다는 뜻으로 읽힌다.
언론에서는 버틀러를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 출신 음악가로 소개한다. 밴드 활동으로 쌓은 경력은 이 연극의 음악이 흉내 낸 음악이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지는 음악이라는 신뢰로 이어진다.
작품이 다루는 이야기는 1970년대 녹음실에서 밴드가 앨범 한 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연극에서 음악이 이야기를 이끄는 구조는 뮤지컬과 닮았지만, 노래가 감정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물이 실제로 해야 하는 일, 곧 연주하고 녹음하는 행위로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음향디자인상 수상이 단순한 기술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 연극에서는 소리가 곧 줄거리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는 관점으로 옮겨 보겠다. 이런 작품은 대사만 듣고 있으면 놓치는 것이 많다. 인물이 말없이 악기 앞에 앉아 있는 순간, 믹싱 콘솔 앞에서 서로 눈치를 보는 순간이 이야기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대사보다 인물의 손과 시선을 먼저 따라가 보자.
녹음실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맞춰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관계를 맞춰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03대서양을 건넌 팀, 웨스트엔드 이전
<스테레오포닉>은 2025년 5월 24일부터 런던 웨스트엔드의 듀크 오브 요크스 극장에서 공연됐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 가운데 일라이 겔브, 앤드루 R. 버틀러, 크리스 스택 세 배우가 런던 무대에 다시 올랐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작품의 호흡을 가장 잘 아는 배우들이 같이 건너갔다는 뜻이니, 앙상블 연기가 핵심인 이 작품에는 의미가 크다. 나머지 배역의 캐스팅은 이 소식이 나온 시점에는 발표 전이었다.
공연 기간은 출처마다 안내가 달랐다. 예매는 처음 9월 20일까지로 안내됐는데, 6월 중순에 나온 BroadwayWorld 리뷰는 10월 11일까지 공연한다고 적었다. 해외 상업 공연은 이렇게 기간이 중간에 늘거나 바뀌는 일이 드물지 않다.

예매를 고려한다면 극장 공식 공지를 직접 확인하고, 종료일이 가까울수록 일정부터 잡는 편이 안전하다.
브로드웨이의 화제작이 웨스트엔드로 옮겨 가는 일은 자주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대형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연극이 이전 공연을 하려면 극장 크기와 객석 구조에 맞게 무대를 다시 짜야 하고, 현지 관객의 귀에도 설득력 있게 들려야 한다.
특히 소리가 중심인 작품이라 극장의 음향 환경이 달라지는 점이 부담이었을 텐데, 오리지널 캐스트 일부를 그대로 데려간 선택이 이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선택은 연극에서도 팀이 곧 작품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대본과 음악은 옮길 수 있어도 배우들이 서로의 숨을 읽는 방식은 사람과 함께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로의 앙상블 중심 작품이 오래 같은 배우진으로 사랑받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04런던의 평은 어땠을까
웨스트엔드 개막 직후의 평을 하나 들어 보겠다. BroadwayWorld의 리뷰는 결말이 완벽하게 떨어지지는 않아도 작품이 효과적으로 쿨하다고 평했다. 영어 원문의 표현은 effortlessly cool이다.
애쓰지 않아도 멋이 나는 작품이라는 뜻에 가깝다. 다른 매체들도 대체로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리뷰가 결말에 아쉬움을 남기면서도 전체 인상은 긍정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앙상블 연기와 분위기로 승부하는 작품은 줄거리의 완결성보다 지나가는 시간의 질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결말이 약간 풀려도 그 앞의 시간이 매력적이면 관객은 작품을 좋아할 수 있다.
보러 가기 전에 결말이 궁금한 분이라면, 이 연극은 결말의 반전보다 녹음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러 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면 된다.

한 편의 리뷰는 개인의 의견이므로 런던 관객 전체의 반응으로 넓혀 읽을 수는 없다. 그래도 토니상에서 인정받은 연출과 음향이 런던 극장에서도 같은 인상으로 전달됐는지를 가늠하는 단서는 된다. 브로드웨이의 평가가 대서양을 건너서도 큰 틀에서 이어졌다는 점이 이 이전 공연의 의미이다.
05혜화동의 시선, 이 성공이 한국 관객에게 건네는 말
해외 작품이라 직접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이야기를 여기서 끝낼 이유는 없다. 상을 받은 직후의 열기가 가라앉은 뒤에도 작품이 어떻게 오래가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 작품은 대형 스타나 유명 원작 없이도 연극이 해외 관객을 모을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 준다.
대학로의 창작 연극이 오래 품어 온 질문, 곧 새로운 이야기만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둘째, 앙상블 연기와 음악의 결합이라는 방식은 우리 무대에서도 낯설지 않다. 배우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작품은 대학로에서도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그래서 이 작품이 어떻게 소리를 이야기의 재료로 삼았는지 비교해 보면 우리 공연을 보는 눈이 한층 넓어진다.
호기심이 생겼다면 음악이 중심이 되는 국내 연극 한 편을 골라 그 작품에서 소리가 줄거리를 얼마나 끌고 가는지 살펴보자.
셋째, 수상 결과를 읽는 방식이다. 5개 수상이라는 숫자만 보면 화려하지만, 연출과 연기, 무대, 음향이 고르게 인정받았다는 구조가 더 중요하다. 새 작품을 고를 때 수상 개수보다 어떤 부문에서 인정받았는지를 먼저 보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기 쉬워진다.
연출상이 마음에 걸리면 장면을 짜는 솜씨가, 음향상이 마음에 걸리면 소리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 작품의 매력이라는 신호이다.
06이 이야기를 따라 계속 지켜볼 것
앞으로 살펴볼 만한 소식이 몇 가지 있다. 한국 라이선스나 내한 소식이 나오는지, 웨스트엔드 공연의 최종 종료 시점이 어떻게 정리되는지, 그리고 이 작품의 음악이 별도의 음반이나 공연으로 이어지는지이다. 현재로서는 국내 공연 계획이 알려진 바 없으니, 소식이 나오면 이어서 전하겠다.
그때까지 가장 쉬운 접근법은 작품이 보여 주는 질문을 가져다 우리 공연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보는 공연에서 소리가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지, 배우들의 호흡이 장면을 만들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해외의 성공 사례는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우리 극장에서 더 잘 보기 위한 렌즈가 된다.
- London Theatre, 「Tony Award-winning hit Stereophonic to transfer to the West End」, https://londontheatre.co.uk/theatre-news/news/tony-award-winning-hit-stereophonic-to-transfer-to-the-west-end
- BroadwayWorld, 「Review: STEREOPHONIC, The Duke Of York's Theatre」, https://www.broadwayworld.com/westend/article/Review-STEREOPHONIC-The-Duke-Of-Yorks-Theatre-20250616
- CBS News, 「Tony Awards 2024 winners list」, https://www.cbsnews.com/amp/news/tony-awards-winners-2024-list
- Tony Awards, 「2024 Tony Nominations」, https://tonyawards.com/media/documents/Tony_Nominations_2024_04_30.docx



